Magic Number 11±1 : 갤러리 도스, 2018. 11. 21. - 11. 27.
<Magic Number 11±1> 프로젝트의 키워드
조경진(철학박사, 미술비평) 이성복의 이번 전시 <Magic Number 11±1>은 그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 글도 전시 서문이라기보다 관람 수행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에 가깝다. 여기 제시한 네 개의 키워드인 ‘개념적’, ‘기능’, ‘프로젝트’, ‘사이버네틱스’는 그의 작업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코드와 접근의 경로들이다. 개념적Conceptual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당황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가 이성복이 내놓은 것들을 식별할 최소한의 코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식별체계와 코드, 그의 사고의 흐름은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 ‘나는 갤러리라는 예술 제도 공간에 들어와 있고, 갤러리는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니, 그 안의 놓인 사물은 어찌되었건 예술작품이다.’ 한발 더 나아가, 관람자가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익숙하고 개념미술이라는 예술 식별 코드를 하나 더 갖고 있다면 그는 이성복의 것들을 개념미술의 범주에 놓을 것이다. 충분하진 않지만 개념미술이라는 코드는 그의 작업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것이긴 하다. 개념미술은 말 그대로 예술작품을 이루는 두 극인 개념적 측면과 물질화된 형식 중에서 개념과 아이디어의 측면을 더 중시하며 관람객이 어떤 식으로건 예술가가 제시한 사물들을 경험함으로써 특정한 아이디어를 얻거나 반성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통상적인 미적 감흥이나 정서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개념미술은 한 가지 목적에 더 봉사한다. 개념미술은 대체로 예술 개념을 문제시하거나 새로운 예술 개념을 제시한다. 그가 이성복의 사물들을 낯설게 느낀다면 그건 개념미술에 익숙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이 당신의 갖고 있는 예술 개념, 예술작품 앞에서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관행적 행위들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그림이라면 그에게 정서적 공감, 몰입, 미적 관조를 요구할 수도, 그림 안 세계와 이야기를 찾기를 바라거나, 기호의 의미를 해독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특정한 미적 속성들에 대한 경험을 유도하거나, 전문가라면 그의 시각언어나 기술적 성취를 바라보게 할 수도 있다. 그의 작업에서는 이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다. 그의 작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수행, 참여, 반성이며, 그로부터 예술 관념과 그 수행, 기능 모두의 변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념미술은 미술 자체에 대한 비평의 기능을 수행한다. 예술에 대한 관념 연상 체계를 묻는 키오스크 설문을 통해 그는 그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예술에 대한 개념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당신이 설문을 통해 받게 되는 건 1000원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들이다. 그 체계를 이루는 관념들은 중요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체계적 관련과 범위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예술을 식별하는 코드이다. 기능Function : 김치냉장고에 대한 오마주 예술 개념의 필요조건 중에는 개념미술을 위한 항목이 있다. ‘지적으로 도전적일 것’ 그의 작업은 당신과 예술계의 예술 개념에 도전한다. 전통적으로 미학은 예술을 일상이나 일상적 기능과 분리함으로써 예술을 예술로서 차별화해왔다. 반면, 그는 예술이 공산품이 수행하는 기능과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기능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모든 예술이 궁극적으로 사물과 세계를 도식화하는 관념과 믿음 체계, 그로부터 만들어진 모델들에 대한 도전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도전은 실용적이고 직접적인 쓰임에 봉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김치냉장고는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롤모델이다. 창조의 순간은 결국 관념들의 새로운 연합으로부터 일어난다. 그의 모험은 ‘냉장고+김치=김치냉장고’라는 이 단순한 창조적 발상으로부터 얻은 영감에서 시작되었다. 프로젝트Project 그의 작업을 식별하는 다른 코드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전시에서 이어져 온 것으로 더 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이성복의 프로젝트는 예술의 기능, 예술이 인간의 삶에 실용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창조적 발상과 그 촉진에 있다고 본다. 그의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적은 발상을 수행하는 기계 장치를 만드는 데 있다. 이에 발상의 정신적 메커니즘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이 메커니즘을 실제로 구동할 기계 장치를 고안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온라인 설문과 함께 진행되는 현장 키오스크 설문에 참여하는 관객은 그의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기여하고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설문 작업은 그가 구상한 발상 메커니즘이 원리상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미리 가늠해보기 위한 단계로 기획된 것이다. 사이버네틱스적 전망Cybernetic Perspective 그의 프로젝트를 식별할 수 있는 마지막 키워드는 사이버네틱스이다. 발상에 관한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정보이론, 신경생리학, 심리학, 예술적, 미학적 접근 등이 그것이다. 이성복은 이들 접근법을 이미 통합하고 있는 사이버네틱스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사이버네틱스는 인간과 기계, 동물 간의 소통과 통제, 그리고 피드백을 통한 조절 과정이 일어나는 모든 영역과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인간처럼 사고하는 컴퓨터,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려는 기획, 인공지능, 유기체의 조절 작용 등도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다뤄진다. 특히 사이버네틱스는 인간과 기계의 소통을 위해 둘을 공히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처럼 다룬다. 이성복은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가장 고유한 기능으로 여겨지는 창조적 발상도 정보 처리와 생성의 특수한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비록 환원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현재로선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떠올리건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정보적 패턴들일 수 있으며, 그 정보적 패턴들은 인간에게 이미지나 관념으로 출력된다. 관념과 이미지는 언어로 출력되며, 언어는 문자로 환원된다. 연관어 설문을 통해 얻은 단어들을 아스키코드로 변환한 이미지, 관객의 스위치 조작을 통해 영어 알파벳이 아스키 코드로 변환되는 과정으로 보여주는 스플립 플랫 디스플레이 장치 등은 이성복의 예술적 발상 장치 프로젝트가 사이버네틱스 관점에 서 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에서 이성복은 발상을 연관어들의 패턴화된 연상 체계와 재조직화로 정의한다. 이는 마치 뉴런들의 연결 관계와 그것들의 지속적인 재조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이란 단어를 보고 당신에게 떠오르는 단어들은 당신의 관심, 중요성, 목적, 경험, 기억, 사고방식, 사고도식에 따라 연관어를 도출할 것이며, 그것들은 하나의 정합적 패턴을 이룰 것이다. 조지 밀러는 기억 연관이 보통 7±2개의 정보들과 함께 일어난다고 말하는데, 이성복은 더 창조적인 발상 기제를 파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목록을 12개로 확장한다. 전시의 제목이 ‘11±1’이 된 이유이다. 7±2개의 연관어 그룹을 벗어날 때 발상은 예기치 않은 방식, 비관습적 방식으로 일어날 확률이 커질 것이다. 설문을 통해 데이터가 축적되면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갖는 평균적인 관념 체계도 얻을 수 있고, 가능한 것들, 전혀 예기치 않아서 희소한 출현 확률을 갖는 것들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우유와 카페 라떼’에서 보듯이 커피와 우유의 조합, 거피가 중심이 되는 조합, 반대로 우유가 중심이 되는 조합은 이미 그런 가능한 변환들을 잘 보여주는 실용적 사례들이다. 가장 단순한 배열의 조절만으로도 새로운 것이 출현할 수 있다. 예술가로는 매우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이성복의 이번 프로젝트 전시는 예술가가 섣불리 걷기 힘을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땅히 응원해야 할 일이다. 환원주의의 구도를 따른다는 점에서 여러 위험을 떠안고 있다는 점, 기술적으로 아직 온전히 구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해도, 이 프로젝트가 그의 확고한 예술 이념에 따른 행위라는 것, 예술의 개념과 기능을 고려하는 데 있어 많은 시사를 준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다른 전문 기술 분야의 도움과 협업을 통해 그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전시를 충분히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예술이란 본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열려지지 않는 세계와 삶의 단면들을 드러내 주는 일을 하지 않는가. 예술가의 미덕은 무엇 하나라도 선명하게 보여주는데 있다. |